Profile 

 

Photo Artist   야마우치 요리히토[Yorihito Yamauchi]

  photo

  1959년 1월 31일 치바현 태생[Aquarius,Blood Type A]
  1979년 도쿄 사진 전문학교 상업 사진 학과 졸업
  1982년 무토의씨의 사사를 거쳐 사무소 설립
  2001년 Official web site 설립  http://www.yamauchi-zeus.co.jp
  2007년 Official mobile site 발신 개시(소니·디지털·엔터테인먼트·서비스) 



피사체는, 자신의 감성을 자극해 주는 아티스트나 뮤지션을 고집해, 23세라는 젊음으로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
일본의 음악잡지 뿐만 아니라, 패션잡지에까지 영향을 준 잡지[Pati Pati](소니 매거진
스간)의 창간에 종사해, 표지로부터 잡지의앞부분 그라비아를시작해, 지면의 반이상을
매월 촬영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래픽·디자이너들이 감히 손을댈수 없을 만큼의
존재감을 감돌게하였고 대부분이 뮤지션과 포토그래프야마우치의아트 작품집같았다.
일본에 락의 일대 무브먼트를 일으킨 첵커즈, 요시카와 코오지, 오자키 유타카 등, 당시
오리콘 차트 상위에 랭크 인 하고 있는 락·뮤지션의 대부분이, 야마우치의 파인더를 통
하여 세상에 내보내졌다.
이「Pati Pati」의 대성공에 의해, 야마우치의 이름은 음악 업계에 단번에 퍼져, CD쟈켓의
의뢰가 쇄도했다.


[[천재]]
오자키 유타카라고 하는 한명의 천재와의 만나.
17세에 데뷔해, 27세에 급서한 카리스마·락·뮤지션.
비오는 날의 장례식에는 5만명의 팬이 모였다.
마치 제임스·딘과 같은 일본의 음악 업계를 달려 나간 그.
야마우치는, 그런 오자키 유타카를 데뷔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기보다는, 강렬하게 오자키에게 이끌려 10년간 셔터를 계속 눌루게되었다.
그 포토 세션은, 천재와 천재가 플러스의 자극과 마이너스의 자극끼리 서로 끌어 들였다고
말할 수 있고, 가끔 플러스끼리의 자극으로 서로 반발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긴장감안에
행해져왔다.
오자키가 오프로 퍼스트 뉴욕에 갔을 때도, 야마우치는 자기부담으로 뒤쫓아 그를 계속
찍었다. 그 때, 뉴욕이라고 하는 거리에 매료되어 이후, 해에 몇차례는, 이 거리를
방문하게 된다.
[NY라고 하는 거리는 인간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NY라는 필터를 통해 자신이 물들어
버리는 곳. 그 필터에 어떻게 물들어 가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자키는,
NY라고 하는 필터를 억지로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해 빠져 버렸지만, 야마우치는, NY라고
하는 필터를 받아 들이고 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결과, 야마우치는, 오자키를 통하여, 칼라 프린트로 입고 하는 일본의 사진계에서는
첫 시도를 확립하여 나아갔다.
원고는 포지티브로 찍어 입고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로, 물론, 색도 선명하게 재현된다.
그러나, 산내는, 색채조차도[초·극채]로 하여, 자신의 세계로 끌어 들였던 것이다.


[[증식]]
아이돌의 사진을 바꾸었다.
[인형이 아니고, 의지가 있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찍어 주었으면 한다. ]야마우치에게
이러한 의뢰가 증가했다.
종래의 아이돌 사진은, 표면적으로 사랑스럽고, 깨끗이 찍히면 그만이였다.
그러나 , 일본에 락 무브먼트가 일어난 것과 때를 같이 하였기때문에, 아이돌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워, 개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라고 하면 야마우치가 켠 등불이, 아이돌
계에서도 불어온것이다.
아이돌의 CD쟈켓에 시작해, 그라비아 잡지[일본판 플레이 보이](당시 주간 200만부) 등,
모든 그라비아 잡지에야마우치표 사진이 실렸다.
패션계에서도, 뛰어나게 우수한 개성파 사진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빨리「유행 통신 」
이라는 패션잡지에 발탁 되어 갑자기 표지+권두(책의 제일앞부분) 수십 페이지의 의뢰와,
일본 최대기업의 화장품 회사[시세이도]을 시작해 수많은 뷰티코머셜 포토도 다루어
야마우치요리히토의 이름은 단번에 사진계의 거장에까지 올라 왔다. 당연한 일이라고생각하
지만, 유사 사진의 증식이 계속 이어졌고, 야마우치는 다음의 존(ZONE)에 발을 들여가고 있었다.


[[ZONE]]
그것은, 사람을 문서로서 파악하는 것.  최근 유행의 아름다움을 무시한 문서 사진과는
달라, 인물의 내면에까지 비집고 들어가, 그 인물의 야성적 본능인[[ZONE]]의 세계 즉,
아름다움의 순간을 파악한다고 하는 시도였다.
타겟은, 에콜로지·아티스트, 마린·아티스트의 제일인자인 화가 크리스챤·랏센을 시작해,
세계적인 게임「파이널 환타지」의 컨셉·디자인을 다루는 천재 아티스트·아마노희
타카시 선생님, 성격 배우이며, 화가이기도 한 카타오카학타로씨 등, 다채로운 활약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들로 향해졌다.
또한, 유술가의 히크손·그레이시(400전 무패), 전 F1파일럿의 잘아레지나 골프의 타이거
우즈, 마루야마 시게키등의 최고급 애슬리트의 세계에도 발을들여나아갔다.

동시에, 그는, 재빨리 인터넷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진다.
독자적인 사이트는 물론이거니와, 유료로 사진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야마우치요리히토의 인터넷·갤러리이다.
지금까지는 출판사가 있고, 편집자나, 그래픽·디자이너가 있고난후,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이 표현 되어왔던 것이, 온디멘드에서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편집,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 라고그는 말한다.
[24시간, 온 세상의 누구나가 볼 수 있다. 이러한 럭키한 시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만의
온디멘드·디지털 출판을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했던 것이었다.


[[챌린지, 오리지날, 추구, 탐방]]
그를 말하는 말은, 해마다 증가해 간다.
그리고, 최근 수십년간, 그가 은밀하게 계속 찍고 있는 것이, 세계 유산이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프랑스의 몬·산·미셸, 베트남의 하-·론만, 영국의 스톤헨지 등,
취재로 온 세상을 돌고 있는 동안에 발길을 뻗쳐 찍어 온 세계 유산의 수는 100개도 가깝게
오른다. 700건 이상이나되는는 유산의 모두를 다 찍을 수는없지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쭉
찍어 계속해 갈 생각이다.
이러한 힐링 사진은, 사진의 영역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그의 파인더를 통해, 그의 대담한 구도나 섬세한 터치로 칼라 프린트 된 오리지날 작품은,
고대의 건조물들이 생명을 가지고 강요해 올 것 같은 신비한 힘을 발하고 있다.
확실히[[ZONE]]의 세계다.
아트 사진을 회화와 동등의 가치감에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꿈은, 세계에 자신의 사진이 남는 것. ]


라이터 후지사와 에이코